[39 ~ 40] 다음 글을 읽고 물음에 답하시오. 설탕은 사탕수수나 사탕무에서 얻은 원당을 정제해 만든 천연 감미료로 자당을 주성분으로 한다. 사탕수수가 처음 재배된 곳은 기원전 8,000년경 태평양 남서부의 뉴기니섬 지역이었다. 이후 사탕수수는 기원전 6,000년경에 인도네시아, 필리핀, 인도 등 동남아시아와 남아시아로 전해졌다. 초기에 사람들은 단맛을 즐기기 위해 사탕수수를 씹어 당을 빨아먹었지만 350년경 굽타왕조 시대에 인도에서 사탕수수액을 활용한 설탕 결정법을 알아냈다. 7세기 중반 당태종 때 인도의 외교사절단이 사탕수수 재배법을 가르쳐 중국에서도 사탕수수를 재배하기 시작했다. 이후, 1747년에 한 화학자가 콧병, 인후염, 변비 등의 치료제로 주로 사용되던 사탕무에 자당이 함유된 것을 발견하였다. 당시 사탕무는 경제성 문제로 설탕 제조에는 활용되지 못하다가, 1801년에 이르러서야 프로이센에서 사탕무를 활용한 설탕의 대량생산에 성공했다. 조선시대에 설탕은 수입에만 의존하는 귀한 식자재였다. 조선시대 요리서에 설탕을 사용하는 조리법이 없는 것은 이 시기 설탕이 널리 퍼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설탕은 개항기에 왕실과 외국인을 중심으로 유통되었으나, 일제강점기에는 도시의 아동과 젊은이의 식생활에까지 확산되었다. 1884년 설탕 가격은 같은 무게 소고기의 2.5배로 매우 높았으나, 1890년대 설탕 수입량이 증가하면서 가격이 하락하였다. 1893년에는 설탕 가격이 1884년 대비 40% 하락했고, 1911년에는 1근(斤)에 9전까지 하락하였다. 이에 따라 전통 음식에도 차츰 설탕을 넣기 시작했다. 1910년대 무렵부터 떡ㆍ한과 같은 병과류(餠菓類)와 음료 같은 음청류(飮淸類)에 꿀이나 엿 대신 설탕을 넣기 시작했다. 1920 ~ 1930년대에 이르러서는 꿀이나 엿을 전혀 사용하지 않던 육류, 생선류, 찬류, 김치류 등에도 설탕을 넣는 신식요리법이 개발되었다. 윗글을 근거로 판단할 때 옳은 것은?
정답 5번19세기가 되어서야 사탕무를 이용한 설탕의 대량생산이 가능해졌다.
인사혁신처 공식 최종정답은 5번입니다. 공식 해설은 별도로 제공되지 않았습니다.
오답 포인트
‘[39 ~ 40] 다음 글을 읽고 물음에 답하시오. 설탕은 사탕수수나 사탕무에서 얻은 원당을 정제해 만든…’의 판단 기준은 ‘19세기가 되어서야 사탕무를 이용한 설탕의 대량생산이 가능해졌다.’입니다. 정답 문구와 해설의 조건을 함께 연결해 기억하세요.
공식 문제지와 최종정답을 문항별로 대조한 기출문제입니다. 공식 해설이 제공되지 않은 문항은 정답 근거만 표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