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제시문의 내용과 부합하지 않는 것은? 영조 14년 안동에 거주하는 몇몇이 주동이 되어 노론이 내세우는 상징적 인물인 김상헌을 제향(祭享)하는 서원을 창건하려 하자, 다수의 남인파 사림이 이에 반대하여 커다란 분쟁이 일었다. 그 후 노론의 유척기는 영남감사로 부임하자 남인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서원건립을 추진하여 건물이 준공되기에 이르렀다. 이에 안동좌수를 비롯한 안동 내 남인출신들이 관령(官令)의 제지를 무릅쓰고 서원을 훼파(毁破)하였다. 이에 대해 노론의 온건파를 대표하던 박사수는 김상헌 서원의 건립 필요성에서부터 훼원(毁院)에 이르기까지의 전말을 소상하게 보고하면서, 선정(先正)을 욕보이고 관장 (官長)을 능멸하여 관령에 항거한 난민(亂民)으로 훼원유생을 규정하고 이러한 난민의 무리를 엄벌해야 한다고 하였다. 반면, 소론인 박문수는 서원창건 문제가 유림의 의론 (議論)에 따라 좌우되는 일반적 경향에 비추어 볼 때 대다수 안동사림의 반대를 무릅쓴 김상헌 서원의 건립이 잘못된 것이라 하였다. 서원을 근거로 해서 전통적인 명문을 압박 하고 남인당론을 강제로 바꾸게 하려는 목적으로 서원건립을 추진했기에 안동 유생과의 사이에 분쟁이 일어나지 않을 수 없었으므로, 훼원이 방자한 행위이기는 하나 온건한 처벌에 그쳐야 하며, 영남인의 불만이 이를 계기로 변란으로 확대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박사수와 박문수의 이러한 의견대립이 일어나자 평소 노소론간의 당쟁에 중도적 자세를 견지하고 있던 탕평파의 안인명은 안동서원의 분쟁이 향전(鄕戰)에 불과할 따름 이므로 조정에서 간여할 문제가 아닌데도 감사가 이를 잘 처리하지 못하여 조정에까지 시끄럽게 하고 체통마저 손상 시켰으므로 이들을 파직시키고, 명색이 선비라고 하면서 선정을 제향하는 서원을 허물었으니 이 또한 처벌하여야 하며, 안동에 김상헌의 서원이 없을 수 없으므로 서원을 개건(改建)할 것을 청하였다. 이에 대해 영조는 멋대로 서원건립을 허가하고, 향촌을 제대로 다스리지 못했다는 이유로 감사를 파직하고, 훼원 유생을 엄벌하되 주동자에 국한시켰으며, 서원개건의 문제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음으로써 이를 묵살하였다.
정답 3번노소론의 주장을 절충하면서도 왕권의 안정을 염두에 둔 영조의 처분은 당시 정치를 주도하던 노론의 주장을 더 받아 들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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