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5급 공개경쟁채용시험(행정) 언어논리영역2026년 시행 · 나책형 · 40문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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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논리영역

1. 다음 글의 내용과 부합하는 것은? 1988년 울진에서는 신라의 화백회의에서 나라의 일이 처리되던 과정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비석이 발견됐다. ‘봉평비’라고 불리는 이 비석에는 524년(법흥왕 11년)에 법흥왕과 각 부의 대표가 거벌모라 지역 주민의 항거를 처벌하기 위해 모여서 회의한 후, 함께 교(敎)를 내렸다는 사실이 기록되어 있었다. 이듬해 또 다른 비석이 포항에서 발견되었는데, ‘냉수리비’라고 불리는 이 비석에는 503년(지증왕 4년)에 진이마촌에서 벌어진 재산 분쟁에 대해 지증왕과 6부 대표가 공동 판결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었다. 두 비석은 6세기 초까지 신라의 화백회의에서 왕과 각 부의 대표가 동등한 자격으로 참여하여 국사를 공동으로 결정하고 집행했음을 보여준다. 신라는 6부가 연합하여 건국한 나라로, 초기에는 각 부가 각자의 영역과 주민을 자체적으로 다스렸을 것이라 파악된다. 화백회의는 이때 왕과 6부의 대표가 모여 회의를 열고 중요한 정사를 처리하던 것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초기의 신라는 박ㆍ 석ㆍ김의 세 성이 돌아가며 왕위를 맡았기 때문에 왕권이 미약했다. 그러다가 김씨가 왕위를 독점 세습하면서부터 서서히 왕권이 강화되고, 점차 국왕 중심의 국가 체제가 갖추어지면서 화백회의의 성격도 변화했다. 특히 531년(법흥왕 18년)에 귀족을 대표하는 최고 관직인 상대등이 설치된 이후부터 화백 회의는 큰 변화를 겪는다. 이때부터 왕은 통상 화백회의에 참석하지 않았다. 상대등이 화백회의의 결정 사항을 정리하여 왕에게 보고하면, 왕은 이에 대한 재가 여부를 결정한 후 국가의 정책으로 공포했다. 이 무렵 6부의 대표는 점차 자체적인 세력 기반을 상실하고 모두 왕의 신료로 재편성됐다. 이 시기에 신라의 왕은 마립간이 아니라 ‘대왕’으로, 귀족들은 ‘신(臣)’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7세기 중반, 신라는 중앙의 행정 관서를 체계적으로 정비하여 국왕 중심의 관료제를 강화했는데, 651년(진덕여왕 5년)에 중앙행정 업무를 총괄하는 집사부가 신설됐다. 이때부터 화백 회의에서 결정된 사항은 왕의 재가를 거쳐 집사부를 중심으로 하는 중앙의 행정 관서에서 분담하여 집행되었다. 이후 통일 신라기에는 중앙행정 관서의 장관 가운데 일부를 재상으로 임명했는데, 이들 중 상재상이 화백회의를 주재했다. 이 시기 화백회의는 ‘재상회의’라고도 불렸다.

시험 정보와 자료 출처
2026년 5급 공개경쟁채용시험(행정) 언어논리영역 나책형

2026년 시행에 시행된 5급 공개경쟁채용시험(행정) 언어논리영역 문제를 실제 문항 순서대로 풀고 최종정답 기준으로 채점할 수 있습니다.

  • 총 40문항 · 제한 시간 40분
  • 객관식 5지 택일형 · 나책형
  • 문제지와 시험 시행기관의 최종정답을 문항별로 대조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