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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제2회 지방직공무원 시험(7급) 국어(한문포함)(지방7급) · A책형 · 14/20

국어(한문포함)(지방7급)

다음 글의 내용을 적절하게 이해한 것은? 조선 시대에 금속활자는 희귀한 물건이었고, 오로지 국가만이 소유할 수 있었다. 조선 전기는 물론이고 조선 후기에도 사정은 다르지 않았다. 민간에도 금속활자가 몇 종 있었지만 극소수 양반가의 소유였을 뿐이다. 그것을 제외 하면, 금속활자는 온전히 국가의 소유였다. 왜 국가가 금속활자를 독점했던 것일까?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 고안에는 상업적 동기가 작용했다. 당시 독일에서는 라틴어 문법 서적 등 인쇄물에 대한 민간의 수요가 많았고, 그 수요는 주로 목판 인쇄에 의해 충족되고 있었다. 구텐베르크는 인쇄물의 생산 가격을 낮추기 위해 금속활자 인쇄술을 고안했던 것이다. 즉 서양의 인쇄술은 상업적 목적으로 민간의 필요에 의해 민간에서 제작되었다. 반면 조선의 금속활자는 국가의 필요에 의해 국가에서 제작한 것이었다. 구텐베르크의 인쇄술은 어떻게 널리 전파될 수 있었을까? 조선에서는 왜 국가가 금속활자 인쇄술을 독점했을까? 여기에는 이루 다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한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본질적인 요인은 표의 문자인 ‘한자’와 표음 문자인 ‘라틴 자모’ 사이의 차이 때문이다. 조선조의 금속 활자는 한자 활자가 대부분이었다. 극단적으로 말해 한문으로 쓰인 책을 어떤 장애도 없이 인쇄하자면 한자 수만큼이나 많은 활자가 필요하다는 의미다. 더욱이 자주 쓰이는 글자는 더 많은 수가 필요하니, 실제 필요한 한자 활자는 한자 전체의 수에 몇을 곱해야 할 것이다. 금속활자는 결코 대량 인쇄를 목적으로 한 것이 아니었다. 목판은 일단 새겨지기만 하면 수요가 많은 책을 복제하는 데 유리했지만, 새로운 수요에 재빨리 대응하기에는 속도가 너무나 더디었다. 또한 책의 종 수만큼 별도의 목판을 제작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었다. 금속활자는 새로운 수요에 신속하게 응할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었다. 다시 말해 다품종 소량 생산이 조선 금속활자의 존재 의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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