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식 공개

2017년 외교관후보자 선발시험 언어논리영역 · 책형 · 24/40

언어논리영역

다음 글에서 알 수 없는 것은?

동아시아 삼국에 외국인이 집단적으로 장기 거주함에 따라 생활의 편의와 교통통신을 위한 근대적 편의시설이 갖춰지기 시작했다. 이른바 문명의 이기로 불린 전신, 우편, 신문, 전차, 기차 등이 그것이다. 민간인을 독자로 하는 신문은 개항 이후 새롭게 나타난 신문물 가운데 하나이다. 신문(新聞) 혹은 신보(新報)라는 이름부터가 그렇다. 물론 그 전에도 정부 차원에서 관료들에게 소식을 전하는 관보가 있었지만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의미에서의 신문은 여기서 부터 비롯된다. 1882년 서양 선교사가 창간한 The Universal Gazette의 한자 표현이 ‘천하신문’인 데서 알 수 있듯, 선교사들은 가제트를 ‘신문’으로 번역했다.

이후 신문이란 말은 “마카오의 신문지를 참조하라”거나 “신문관을 설립하자”는 식으로 중국인들이 자발적으로 활발하게 사용하기 시작했다. 상업이 발달한 중국 상하이와 일본 요코하마에서는 각각 1851년과 1861년 영국인에 의해 영자신문이 창간되어 유럽과 미국 회사들에 필요한 정보를 제공했고, 이윽고 이를 모델로 하는 중국어, 일본어 신문이 창간되었다. 상하이 최초의 중국어 신문은 영국의 민간회사 자림양행에 의해 1861년 창간된 상하이신보다. 거기에는 선박의 출입일정, 물가정보, 각종 광고 등이 게재되어 중국인의 필요에 부응했다. 이 신문은 ‘○○신보’라는 용어의 유래가 된 신문이다.

중국에서 자국인에 의해 발행된 신문은 1874년 상인 왕타오에 의해 창간된 중국어 신문 순후안일보가 최초이다. 이것은 오늘날 ‘△△일보’라는 용어의 유래가 된 신문이다. 한편 요코하마에서는 1864년 미국 영사관 통역관이 최초의 일본어 신문 카이가이신문을 창간하면서 일본 국내외 뉴스와 광고를 게재했다. 1871년 처음으로 일본인에 의해 일본어 신문인 요코하마마이니치신문이 창간되었고, 이후 일본어 신문 창간의 붐이 일었다. 개항 자체가 늦었던 조선에서는 정부 주도하에 1883년 외교를 담당하던 통리아문 박문국에서 최초의 근대적 신문 한성순보를 창간했다.

그러나 한문으로 쓰인 한성순보 와는 달리 그 후속으로 1886년 발행된 한성주보는 국한문 혼용을 표방했다. 한글로 된 최초의 신문은 1896년 독립협회가 창간한 독립신문이다. 1904년 영국인 베델과 양기탁 등에 의해 대한매일신보가 영문판 외에 국한문 혼용판과 한글 전용판을 발간했다. 그밖에 인천에서 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위한 정보를 알려주는 신문 등 다양한 종류의 신문이 등장했다.

2017년 외교관후보자 선발시험 언어논리영역 24번 공식 문제지 도표 또는 그림
문제 자료

공식 문제지와 최종정답을 문항별로 대조한 기출문제입니다.